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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엄마와 중학생 딸 일상

무진기행을 통해 본 현대인의 고독과 자아 찾기

by 맘픽로그 2025. 2. 21.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잊어버렸다. 분명 어딘가에서 이어진 <무진기행>이다.

다른 책 구입하면서 중고로 무진기행을 담았다.

 

 

"김승옥은 1960년대 한국 사회를 묘사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작가의 말]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는 것은 작가가 원고의 끝에 '끝'자를 쓰는 순간이 아니라 독자가 읽고 난 이후 독자 나름대로 그 소설이 느껴지고 해석되어지는 순간이다.

 

1970년대 때 일이다. 월간잡지 [문학 사상]의 주간이시던 이어령 선생께서는 내가 그 무렵, 생계를 위해서 영화 각본만 쓰고 소설 쓰기는 등한히 하는 것을 퍽 안타깝게 여기셨다. 이 선생은 내가 대학교 일학년 학생일 때 서울대에 시간강사로 출강하고 계셨는데 그때부터 가깝게 지내온 터였다.

 

당시로서는 최고급 호텔이던 서린 호텔에 방을 잡아놓고 돈 걱정은 하지 말고 그 방에서 소설 한 편을 완성하고 나오라는 호의를 베푼 적도 있었다.

글자 한 자 못 쓴 채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마치 모자라는 돈으로 택시를 탔을 때처럼 미터 요금이 오를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듯 그 비싼 호텔비가 하루하루 올라가는 것에 나는 신경쇠약이 되고 말았다. 원고지 한 장도 못 쓴 채 비싼 호텔비, 밥값만 잔뜩 이선생계 부담시키고 호텔을 탈출한 적도 있었다.

 

나는 장편으로 구상하고 있던 [서울의 달빛]의 프롤로그 백오십 장을 써내고 '서장'이라는 뜻에서 제1장 제2장 하듯이 제0장이라고 적어 보냈다. 제목은 물론 그냥 '서울의 달빛'이었다. 그런데 이 선생께서 "김승옥이한테서 다음 제1장의 원고를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는 건 어리석은 것이다. 이 0장만으로도 단편소설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으니......" 그러고는 본문 맨 처음에 붙어야 할 0장이라는 낱말을 제목 밑에 갖다 붙여버린 것이다. 책이 나온 다음에야 나는 제목이 괴상하게 길어졌음을 알았다. 이 선생의 예언대로 나는 그다음 제1장을 오늘날까지 아직 못 써내고 있다.

 


[책 읽으며]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이 책을 끝까지 읽기로 했다. 이어령 선생이 거론되어서다. 내 책 읽기란 늘 이렇게 싱거운 이유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책까지 싱겁진 않다. 나는 [무진기행]을 읽으면서 몇 날 동안 물을 벌컥벌컥 마셔댔으니 이 책은 심히 짰다. 그러면서 문학의 기준은 어디이고 나는 그들의 기준에 맞춰 읽는 평론가도 아닌 게 왜 그리 두둔해가며 읽었는지 모른다.

 

평범한 독자로서 [무진기행]은 똑똑하게 쓰인 비겁한 변명의 책이었고, 허망하게 읽히는 부끄러움에 대한 책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모든 윤리적인 이성을 내려두고 읽자니 한 인간의 두려움과 혐오감 사이에 서있게 만들었다. 시대를 말하자면 입도 뻥긋할 수 없는 결코 이해했다 할 수 없는 세대의 고독이었다.

 

지금 형성된 내가 아닌 이십 대의 내가 읽었더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까지 하니 읽고도 제대로 읽었다 말하기 어려운 [무진기행]이었다. 27살에 이 글을 발표했고 하니 어쩌면 이 책과 도킹에 적합한 사람은 20대일지도 모르겠다. (모르긴... 사실이 그렇다.)

 

무진이라는 곳에 대한 기행문이거니 하며 열었던 책은 여러 단편 중 하나가 <무진기행>이었다. 단편 하나하나 읽다 보니 통으로 하나의 무엇이 되고 마는 설명하기 어려운 책이다.

 

짜증 날 만큼 솔직해서 읽으면서 이해해 보려는 마음과 시대적 찬사에서 벗어나 개인적으로 읽어보자는 마음의 투쟁 역시 이 책을 읽는 내내 일어났다. 남성에게 있어 여성은 무엇인가. 문학에선 담대하게 성에 대한 생각을 써낸 이 글에 하나의 껍질을 깨고 나온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뒤에 이어 나온 작가들의 조금 더 솔직하려는 글들을 만난 뒤라 모든 단 편안에 들어간 여성의 자리가 꽤나 불편했다.

 


 

 

[책을 읽고]

 

싫으면 안 읽으면 되지.

하지만 나는 책을 읽고 난 마지막 장에 이렇게 적어뒀다.

 

나는 이 글들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글들을 미워할 수도 없다.

미친 듯 써 내려갔을 날 선 글자들은 혐오감에 맞서 펜으로 찍어보려는 듯 날카로웠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던 마음은 어김없이 엿 먹고 만다.

 

 


 

 

단편 <역사> 문장

출처 입력

 

 

88p

다정한 친구

그 친구는, 내 생활이 그래가지고는 도저히 희망 없는 것이라고, 그리고 내 생활태도에는 일부러 타락한 자의 그것을 닮으려는 점이 엿보인다고 진심으로 걱정해 주며, 빈민가에서의 그렇게 무질서하고 퇴폐적인 생활과 질서가 잡히고 규칙적인 또 한쪽의 생활과의 비교도 재미있지 않겠느냐고 나를 타이르는 식으로 얘기하며, 자기 친척 중에서 퍽 가풍이 좋은 집안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자기가 나의 하숙을 부탁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 자신도 나의 무궤도하고 부랑아 같은 생활태도를 비록 내 천성의 게으름과 가난한 자들의 특징인 금전의 낭비벽, 그리고 이제는 돌아갈 고향도 없이 죽는 날까지 이 서울에서 내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절망감에다가 핑계를 대고 변명해 보려 했지만 아직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써도 내 생활태도 개선의 기능은 충분하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면 나도 나 자신의 기만을 인정치 않을 수 없곤 했던 참이라 그 친구의 의견을 고맙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90p

가풍이 없는 가정은 인간들의 모임이 아니다. 가풍이란 질서 정신에 의해서 성립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가정은 사변 때 식구들의 생사조차 서로 모를 정도로 파괴되었다. 그래서 더욱 가정의 귀중함을 알았지 않느냐. 그러니 질서 정신에 입각해서 각기 가정은 가풍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하는 데 장애가 아주 많은 게 우리들이 처한 현실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지나치다 할 정도로 자신들에게 엄격해야 한다.

 

105p

그 집- 그날 많은 얼굴들이 살던 그 집에서 나는 나 자신 속에서 꿈틀거리는 안주에의 동경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의 헤어날 길 없는 생활 속에 내가 휩쓸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곳을 뚝 떠나서 이 한결같은 곡이 한결같은 악기로 연주되는 집에 오자 그것은 견디어낼 수 없는 권태와 이 집에 대한 혐오증으로 형체를 바꾸는 것이었다. 나란 놈은 아마 알 수 없는 놈인가 보다.

 

 


 

 

[무진기행] 문장

 

159p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바람은 무수히 작은 입자로 되어 있고 그 입자들은 할 수 있는 한 욕심껏 수면제를 품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되었다.

 

무진에서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쩌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생각들이 나의 밖에서 제멋대로 이루어진 뒤 나의 머릿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듯했었다.

 

 

162p

무진행이 내게는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였었다.

 

문득 한적이 그리울 때도 나는 무진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럴 때의 무진은 내가 관념 속에서 그리고 있는 어느 아늑한 장소일 뿐이지 거기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았다. 무진이라고 하면 그것에의 연상은 아무래도 어둡던 나의 청년이었다.

나의 어둡던 세월이 일단 지나가버린 지금은 나는 거의 항상 무진을 잊고 있었던 편이다.

 

164p

어머니에 의해서 골방에 처박혀졌고 의용군의 징발도 그 후의 국군의 징병도 모두 기피해버리고 있었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을 부르며 읍 광장에 서 있는 트럭들로 행진해 가서 그 트럭들에 올라타고 일선으로 떠날 때도 나는 골방 속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들의 행진이 집 앞을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나는 무진의 골방 속에 숨어 있었다. 모두가 나의 홀어머님 때문이었다.

 

내가 골방보다는 전선을 택하고 싶어 해가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에 쓴 나의 일기장들은, 그 후에 태워버려서 지금은 없지만, 모두가 스스로를 모멸하고 오욕을 웃으며 견디는 내용들이었다.

 

174p

"형님, 보세요. 안개가 내리는군요."

과연 한길의 저 끝이, 불이 드문드문 박혀 있는 먼 주택지의 검은 풍경들이 점점 풀어져가고 있었다.

 

박은 가고 나는 다시 '속물'들 틈에 끼었다. 무진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은 모두 속물들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무위와 똑같은 무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장난이라고.

 

188p

이 바닷가에서 보낸 일 년. 그때 내가 쓴 모든 편지들 속에서 사람들은 '쓸쓸하다'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단어는 다소 천박하고 이제는 사람의 가슴에 호소해오는 능력도 거의 상실해버린 사어 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무렵의 내게는 그 말밖에 써야 할 말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었다.

 

 

 

190p

"세상에 착한 사람이 있을까?"

 

"착하게 보아주려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도 착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193p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저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다 놓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였듯이 당신을 햇볕 속으로 끌어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대로 소식 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쓰고 나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봤다. 또 한 번 읽어봤다. 그리고 찢어버렸다.

 


 

 

[서울 1964년 겨울] 속 문장

 

 

이방인처럼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2

5

8

p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

 

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우리 세 사람이란 나와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안이라는 대학원 학생과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요컨대 가난뱅이라는 것만은 분명하여 그의 정체를 알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는 서른대여섯 살짜리 사내를 말한다.

 

260p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263p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264p

"난 우리 또래의 친구를 새로 알게 되면 꼭 꿈틀거림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얘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얘기는 오 분도 안 돼서 끝나버립니다."

 

2

6

7

p

"밤거리에 나오는 이유는 뭡니까?"

 

"하숙방에 들어앉아서 벽이나 쳐다보고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밤거리에 나오면 뭔가가 좀 풍부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뭐가요?"

 

"그 뭔가가, 그러니까 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난 김형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내 대답은 이렇습니다. 밤이 됩니다. 난 집에서 거리로 나옵니다. 난 모든 것에서 해방된 것을 느낍니다. 아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느낀다는 말입니다. 김형은 그렇게 안 느낍니까?"

 

 

 

2

7

0

p

 

"미안하지만 제가 함께 가도 괜찮을까요? 제게 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아주 비싼 걸 시켜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나는 그의 권유를 철회시키기 위해서 말했다.

 

"네, 사양 마시고." 그가 처음으로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돈을 써버리기로 결심했으니까요."

 

 

 

"들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오늘 낮에 제 아내가 죽었습니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난 서적 월부판매 외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 원을 주더군요.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주시겠어요?"

"함께 있어주십시오."

 

"멋있게 한번 써봅시다"

 

 

2

8

6

p

"김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두 그건 분명합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그 뭔가가,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우리는 헤어졌다.

 

 


 

[서울의 달빛 0장] 속 문장

 

상투적. 윤리.

 

 

377p

나는 모든 타인들에게 그들이 나의 타인임을 분명히 해두고 싶었다. 아니 그들이 내가 자기네의 타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아내는 말하라 것도 없고, 어머니와 형님까지도 나로서는 타인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여자와 결혼을 하면서부터 내가 그들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383p

썩은 술에 의해 썩어가는 사고, 썩은 사고에 의한 썩은 감정. 상투적으로 끓어오르는 상투적인 증오. 현관 속의 피는 검은색으로 변하고 있으리라. 인간은 행복할 자격이 있는가?

형편이 좀 나아지면 발정한 개들처럼 닥치는 대로 붙을 자리만 찾아다닌다. 사람들이 결국 바라는 건 필요 이상의 음식, 필요 이상의 교미, 섹스의 가수요. 부잣집 며느리 여름철에 연탄 사모으듯, 남의 아내건 남의 아내가 될 여자건 닥치는 대로 붙는다. 남의 사랑을 위한 빈자리를 남겨두지 않는다. 물처럼, 공기처럼, 여력만 있으면 빈자리를 메우려 든다. 인간은 자연인가?

자리를 찾지 못한 자들의 증오. 평화가 만든 여유. 여유가 만든 가수요. 가수요가 만든 부패. 부패가 만드는 증오. 부패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남은 일은 증오의 누적, 그리하여 전쟁. 전쟁은 필연적이다. 전쟁으로 모두 빼앗기고 다시 시작. 인간은 행복할 자격이 있는가?

 

 

그게 아녜요. 형편이 나아져서가 아녜요. 아내가 말한다. 그럼 뭐야.

돈 때문이니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건 돈이니까.

 

아녜요. 슬픔 때문예요. 종말에 대한 슬픔이 섹스를 만든 거예요.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를 지배하고 있는 슬픔이 우리들의 섹스를 만들어요. 사람들은 슬퍼하고 있어요. 당신이 바라고 있는 그 전쟁 때문예요.

전쟁이 나면 이번엔 아무 데도 도망가라 데가 없다는 걸 어린애까지도 알고 있어요. 지난번 전쟁보다 더 끔찍하리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어요. 종말에 대하나 불안이에요.

슬픔이 적개심을 휩싸서 녹여버려요.

 

희망을 거는 건 인간이 독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뿐이죠. 그렇지만 그런 희망이 얼마나 허망한 결과로 나타ㅏ나는지는 정부에서 설명 안 해줘도 누구나 알고 있어요. 그래요. 모두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슬픔예요. 그 슬픔은 특히 남자들을 사로잡고 있어요. 그 슬픔이 남자들의 윤리를 허물어뜨려요.

 

 

401p

나라고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이전의 나로부터 점점 멀어져갔다 물론 이건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전에도 항상 이건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었다. 이건 내가 아니고 이전의 내가 나라고 한다면 이전의 나는 그 이전의 나를, 그 이전의 나는 그 이전의 나를.... 그리하여 나는 無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건 내가 아니라고 하는 바로 내가 나임을 나는 안다. 어느 때가 돼야만 이건 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402p

육지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자는 잠시 얕은 바다에 뛰어들면 되지만, 되돌아가고 싶은 육지도 없이 바다의 부력에만 존재를 맡기고 떠내려가는 자가 변화를 시도하려면 물 속 깊이 빠져버리는 수밖에 없다.

 

 

405P

과거를 소유한다는 것이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결혼하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가져가는 것은 결코 가구나 패물만이 아니다. 자기들의 모든 과거를 짊어지고 만나는 것이다. 친정 식구들마저도 그 여자의 과거로서 남편에게 가져가는 것이다.

 

 

410p

약솜을 사가지고 왔을 때 그 여자는 없었다. 찢어진 통장의 종잇조각들만 마음의 쓰라린 파편으로서 땅바닥에 널려져 있었다. 나 역시 그 여자와의 완전무결한 몌별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증오의 고통도 함께 찢겨져버린 것이다.